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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리(順理)에 따라 분수에 맞게 산다(85호 12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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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운영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956회 작성일 06-12-20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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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리란 도리(道理)에 순종하는 것이라고 했고 도리는 사리(事理), 원리(原理), 진리(眞理), 정의(正義) 등이라고 했다. 결국 주어진 팔자(八字)대로 산다는 것이다. 사람이 나이를 먹는 데 있어서 누구나 다 평등하다. 해가 바꿔지면 한 살씩 나이를 먹게 된다. 그러나 늙어가는 데 있어서는 누구나 다 똑같지는 않는 것 같다. 어떤 사람은 빨리 늙고 어떤 사람은 서서히 늙어 간다. 정년(停年)을 고비로 퍽 늙은 사람과 그 반대로 그것을 계기로 젊어져 가는 사람이 있다. 그 차이는 간단하다. 그 사람이 청춘을 살고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따라서 다르다고 했다. 청춘을 제대로 살지 않는 사람은 젊은 층에도 있고 일찍이 중년이 되어서 청춘하고는 담을 쌓고 마는 사람도 있다. 인생 60세가 되었으니 사람이 반드시 늙는 것이 아니다. 50세나 40세, 아니 20세가 되어서도 늙는다. 인생의 목표, 사회 역할을 상실했을 때 소위 이상과 꿈을 추구하는 정열을 잃었을 때 사람은 사정없이 늙어간다고 했다.

오늘날 중고년(中高年)의 실업자 수가 늘어 가고 있다. 과학의 진보, 기술혁명이 급속도로 전개되는 속에서 그리고 시대의 흐름에 따르지 못하고 컴퓨터 다 무엇이다 해서 여러 가지 새로운 기기(機器)를 다룰 줄 모르는 사람이나 창의성이나 진취성이 뒤떨어진 사람들도 쓸모없는 인간으로 간주되어 직장에서 밀려나가게 된다. 사회에서 자기의 역할을 상실했을 때 사람은 정년이나 연령에 관계없이 쓸모없는 노인의 범주에 집어넣어져 버리게 된다. 바야흐로 산업사회에 있어서 폐기물(廢棄物)이 되고 마는 사회이다. 자기 역할의 상실과 늙음이 직결되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우리들이 인생을 나름대로 잘 살고 대우도 받고 보람 있게 살아 보려고 갖은 노력 다 해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뒤돌아보는 인생여정은 화려한 것만은 아니었다. 하기야 온 세상 사람들이 다 바라는 대로 만사 다 형통해 버린다는 것도 곤란한 이야기이다. 잘 살고 못 살고 뒤섞여 살아가는 것이 현실이 아닌가 싶다. 무궁화 꽃이 아름답다 해서 무궁화 꽃만 피면 그렇게 아름답지도 못할 것이다. 여러 가지 꽃들이 서로 뒤섞여 피어 있을 때 한결 꽃들이 아름답게 보이듯 인생도 그렇게 희비쌍곡(喜悲雙曲) 서로 엉켜 섞였을 때 이야기가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 인생의 수레바퀴를 말해 준 이와 같은 고사(故事) 속에 회남자(淮南子)의 인간훈 편(人間訓 編) 속에서 ‘인간만사 새옹지마(人間萬事 塞翁之馬)’ 이야기가 나온다. 이것은 한나라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이 지은 것이다. 이 인간훈 편은 원래 이 세상사는 모두가 길흉화복(吉凶禍福) 속에 있다고 보고 그 이법(理法)을 추구한 것이다. 새옹지마와 비슷한 이야기가 많이 수록되어 있으나 그 중에서 이 새옹지마 이야기가 어느 것 보다 실감 있게 다루어져 있다.

중국 전한(前漢)의 국경 요새지 주변에 늙은 이(노옹,老翁)가 살고 있었다. 그 노인은 말을 기르고 있었다. 어느 날 그 말이 웬 일인지 한나라 지방의 흉노(匈奴)가 살고 있는 호(胡)나라로 달아나 버렸다. 호(胡)란 중국에서 이적(夷狄, 오랑캐)을 일컬었던 말이고 진.한(秦漢)시대에는 흉노를, 당대(唐代)에는 널리 서역(西域)의 여러 민족을 호(胡)라고 불렀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노인을 찾아와서 말이 달아나 버려 안 되었습니다하고 위로하면 노인은 그들에게 오히려 행복한 결과가 될 런지 누가 아느냐고 대답했다. 그런데 몇 달 후에 그 말이 한 필의 준마를 데리고 돌아 왔다. 그때 동네 사람들은 다시 행운을 축하하니 노인은 도리어 불행이 될 런지 누가 아는가하고 대답했다. 훗날에 노인의 아들이 승마를 즐기다가 말에서 떨어져 넓적다리의 뼈가 부러졌다. 그래서 또 동리사람들이 다시 불행을 위문하게 되었다. 그때 노인은 또 불행이 행복이 될 런지 누가 아느냐고 대답했다. 그런지 일 년 후에 호(胡)나라 대군이 변두리 요새지에 침입해 왔다. 이래서 장정들이 활(弓)을 가지고 전쟁터에서 싸웠다. 이로 인해서 요새지 주변에 살고 있었던 젊은 사람들은 10명 중 9명은 다 싸움터에서 싸우다가 죽었다. 그러나 넓적다리의 뼈가 부러졌던 노인의 아들은 불구자이어서 소집되지 않아 전쟁에 가지 않았으므로 노인의 아들은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화(禍)가 복(福)이 되고 복이 화가 된다는 것이다. 이 변화의 여러 가지 상황을 어떻게 보아야 옳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 도리의 심원(深遠)한 것을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고 했다.

인생에 있어서 길(吉)이 흉(凶)으로 바뀌어 지고 화(禍)가 복(福)으로 변화하는 등의 것을 전혀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무엇이 행복이 되고 무엇이 불행으로 전환(轉換)될 지 간단히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행을 슬퍼할 필요도 없고 행복을 무작정 즐거워할 것도 못된다고 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흔히들 세상 돌아가는 것은 모두다 ‘인간만사 새옹지마’라고 말한다. 그것은 인생에 있어서 길흉화복이 무상(無常)하며 예측할 수 없음을 말해 준 것이다. 노자(老子)도 그의 도덕경(道德經) 제 58장에서 복이나 화가 또는 화가 복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 알아낼 수가 없다고 했다. 결국 지상에서 길흉화복이란 것은 예지(豫知)할 수 없고 사전에 알아낼 수도 없다는 것이다. 이래서 진(晋)나라 도사(道士) 갈홍(葛洪)은 포박자(抱朴子) 속에서 지적한 대로 “운명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우주의 진상을 알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화(禍) 속에 행복은 숨어 있고 행복 속에 화가 도사리고 있다. 영화(榮華)는 불우할 때에 싹을 트고 파멸(破滅)은 득의(得意)했을 때 나타난다고 했다. 이래서 새옹실마(塞翁失馬), 새옹득실(塞翁得失), 인간만사 새옹지마라고 했다. 소위 한 때의 이(利)가 장래(將來)에는 오히려 해(害) 되기도 한다는 뜻이다.

노자가 말하기를 만물이 극(極)에 달하면 반드시 휘어진다고 했다. 과분한 욕심은 인생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저 순리대로 분수에 맞게 사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우리들은 눈앞에 행(幸), 불행(不幸), 득(得), 실(失)에 일희일우(一喜一憂)하지 않고 언제나 새옹지마 이야기와 같이 화(禍)나 복(福)은 ‘얽힌’ 노끈과 같다고 했듯이 서로 얽혀 있는 것이다. 이런 것을 알고 바라던 일이 척척 이루어 졌을 때 담담(淡淡)하고, 뜻을 펴지 못할 때도 조금도 동요하지 않는다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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