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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기행[시작]-잣고개 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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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운영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177회 작성일 07-07-23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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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편, 나의 길, 나의 아리랑

1. 나의 길

잣고개 아리랑

  떠나온 지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내가 살던 고향 전남 광주를 찾아가면 지금도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행정 개편으로 광주시 서방면 우산리는 지명조차 사라졌으나 그 자리는 아직 남아있다. 특히 나와 인연이 깊었던 잣고개는 광주에 가면 꼭 찾아보고 오는 곳이다. 이 잣고개에 올라가 광주의 발전된 모습을 바라볼 때는 정말 감개무량하다.

  우리 집은 무척 가난했다. 아마 예닐곱 살 때였으리라고 기억된다. 아침 일찍 지게를 지고 산에 솔잎을 긁으러 갔다. 그때 항상 걷던 길, 광주역에서 담양 가는 철도가 깔려 있어 밤실에서 잣고개를 가려면 철도길을 넘어야 잣고개에 도착한다. 그 고개를 넘어 한참 걸어가면 청풍마을에 이르는데, 도중에 있는 밤실이라는 곳에 친구 김수호가 살고 있었다. 그의 집은 아버지가 광주우체국장도 하시어 부유하였다. 또 밤실은 마을 앞에 계곡물이 흐르는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었다. 어렸을 때 지게를 지고 그 옆을 지날 때마다 아름다운 경치에 취하고 했다.

  바로 위 형님과 둘이서 산에 나무를 하러 갔었다. 솔잎도 긁어모으고 솔방울도 주워 왔다. 솔방울을 줍다가 솔잎이 섞이면 형님이 야단을 쳤다. "솔방울은 솔방울만 주워야 해. 솔잎과 솔방울이 섞여서는 안 된다" 고 했다. 내 생각에는 솔잎이 섞여 있으면 불을 때기도 좋을 것 같은데, 안 된다고 해서 솔잎은 솔잎대로 긁어모으고 솔방울은 솔방울대로 주워 모았다.

  그러다 보면 배가 고팠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침에 먹을 것이 없어 굶고 산에 왔으니 말이다. 아침 일찍 집을 나와 잣고개를 넘어 산 깊숙이 들어가 서너 시간 나무를 하면 지게에 짊어지기에 알맞은 양이 된다. 그것을 단단히 묶어서 지고 내려와야 한다. 한참 내려와 걷다 보면 잣고개를 넘기 전에 조그마한 주막이 하나 있다. 어느 날 지게를 지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그 주막 앞을 지나려 하는데 할아버지 한 분이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얘야, 길이 멀더라도 저쪽 산기슭으로 돌아서 가거라. 지금 주막에서 산감(나무를 베지 못하게 감독하는 사람)이 술을 마시고 있는데 너를 보면 솔잎이다 뭐다 해서 몰수하여 술값으로 하고 말 것이니 먼 길을 택하거라."

  그리고 "자그마한 녀석이 나무를 하다니..." 하며 혀를 쯧쯧 차셨다. 할아버지 보기에 어린애가 측은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할아버지 말대로 나는 주막을 피해서 가야 했다. 아침 일찍 밥도 먹지 않고 점심때까지 긁어모은 나무를 몰수당할까 봐 겁이 나서 멀지만 밤실 쪽으로 돌아서 가기도 했다. 주막집 앞을 지나면 곧장 잣고개에 도착하는데, 안 그래도 무거운 나뭇짐을 지고 산감의 눈을 피해 걸었던 기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잣고개'는 지금은 도로포장이 되고 상가들이 들어서서 옛날 같은 고개 기분이 나지 않는다. 그것은 옛길이 걸어야 할 운명 같기도 하다. 비록 옛 '잣고개' 길이 없어지고 자동차가 질주하는 도로가 되어 벼렸지만 내가 어렸을 때 걷고 넘었던 '잣고개'길, 그때는 길손들의 애환과 삶이 진주처럼 숨어 있던 고갯길이었다. 보부상의 땀과 눈물이ㅡ 때로는 민초들의 한이 서려 있는 '잣고개'길. 그래서 옛사람들은 고개를 모두 아리랑고개라고 불렀는지도 모르겠다. 이 '잣고개'를 넘으면서 부르고 들었던 아이랑은 오늘날 내 삶 속에서 잊을 수 없는 그 옛날로, 내일로 이어지는 세계이기도 하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

  그 당시 나이 어린 내가 나무 지게를 지고 고개를 넘으며 귀동냥으로 들어 읊었던 노래가 '아리랑'이다. 내가 처음으로 아리랑을 만난 곳이 '잣고개'였다. 그래서 내게는 잊을 수 없는 곳이 이 잣고개이고 아리랑고개인 셈이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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