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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기행- 스시마(對馬)의 아리랑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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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운영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398회 작성일 09-01-24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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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남단 부산에서 49.5km의 거리에 자리잡고 있는 스시마는 한국과 규슈(九州)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나가사키현(長崎縣)에 속하고 가미지마(상도上島)와 시모지마(下島)의 두 섬으로 되어있다. 이 섬에서 매년 8월으; 첫째 토요일, 일요일에 300년 전 조선 통신사가 대마도에 도착한 것을 기리는 아리랑 축제가 열리고 있다. 스시마는 지리적 조건으로 한국과 일본 양국에 중개역할을 해 왔고 특히, 토지가 협소하고 비옥하지 못하여 고려말부터 조공(朝貢)을 바치고 쌀, 콩 등을 답례로 받아가는 관계에 있었다.

  그러나 스시마는 왜구(倭寇)의 소굴이 되어 그들의 행패가 심하여 세종때에는 스시마를 정벌이라는 강경책을 쓰기도 했다. 그러나 스시마 도주(島主) 무네사다모리(宗貞盛)의 간청으로 왜인의 통상을 위해 삼포(능천재포, 동래(東萊) 부산포(釜山浦), 울산(蔚山) 염포(鹽浦) )를 개항하고 조선의 해방(海防) 정책에 따라 특별한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임진왜란(壬辰倭亂)때는 일본 수군의 중요한 기지가 되었다.
  17세기에서 19세기까지 조선에서 일본으로 통신사를 보내게 되었다. 300년전 이야기 이다. 이 통신사가 제일 먼저 상륙한 곳이 대마도였다. 이 통신사의 왕래로 인해서 일본 문화의 기여한바 컸으나 특히, 스시마와의 관계는 더욱 깊었다. 부산은 17세기-19세기 조일 선린(善隣)우호(友好)의 상징인 통신사의 총집결지였었다. 그러나 오늘날 부산에는 통신사에 관한 이렇다할 유적 하나 남지 않았다. 그러나 스시마에는 통신사에 관한 자료와 유적이 많이 남아있다.

  조선통신사의 대마도 도착한 것을 잊지않고 지금도 아리랑 축제를 비롯한 여러 행사를 하고 있다. 이 행사 기간에는 섬 전체가 19세기로의 역사 여행으로 술렁거리게 된다. 축제 뿐만 아니라 매일 정오가 되면 동요 ‘무궁화’가 2002년 4월 부터는 ‘고향의 봄’이 대마도 중심지인 이즈하라(엄원(嚴原)) 전역에 울려퍼진다고 한다. 스시마의 한국 사랑은 다시 만남을 통한 진솔한 마음의 교류만이 상대에 대한 편견과 무지를 극복하고 상호인정과 이해의 진정한 선린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을 말없이 강조하고 있다.

  통신사의 왕래가 없었던 300년 전에는 스시마에는 이렇다할 언어나 관습등이 없었다. 이때 통신사가 와서 그림그리는 것, 한국말, 그리고 여러 관습등을 가르쳐 주었기에 그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이 행사를 해 왔던 것이다. 이 행사중에는 한국에서 무용가, 음악인, 그리고 대학생들이 와서 행사에 참가하여 뜻깊은 페스티벌을 치루었던 것이다. 그들이 5일 정도 섬에 머무르면서 이런 교제를 통해서 양국이 더욱 가까워졌다. 이 행사는 어떠한 정치적인 접촉보다는 문화적 행사이었으므로 양국간의 이해 관계형성에 막대한 공헌을 했었다. 물론 일부 일본인 중에는 조선이300년 전에 일본보다 앞선던 문화를 가졌고 또 일본에 영향을 준 사실을 무시하고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도 없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도 아닌 일본 그것도 스시마에서 아리랑 페스티벌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아리랑이 가지고 있는 전파력에 대해 다시금 느낀바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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