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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벅수? (2017.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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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운영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447회 작성일 17-11-16 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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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마지막 밤도 훌쩍 지나갔다. 가을과 사랑, 그리움을 읊던 노래들이 매미 울음 사라지듯이 사라졌다. 사실, 9월이 오는 소리 다시 들으며, 시월이 가기 전에 그리운 사람을 기대했던 올가을은 무참히도 아무 일없이 멀어져간다. 내게 이번 가을은 잔인하다. 마지막 남은 경품마저도 걸리지 않고 끝나버린 잔치 마당 같다.

수십 명이 줄을 문질러대고 바람을 불어 불길을 태웠다. 두어 시간을 즐겁게 보냈다. 쬐끄만 바이올린이 귀청을 찌르고 듬직한 첼로의 중후한 저음은 가슴을 흔든다. 음정, 박자, 화음, 무엇하나 흠잡을 데가 없다. 마르티누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귀에 익은 교향시, 나의 조국 중의 몰다우 강으로 시작했다. 속으로 따라 불렀다. 이게 애잔한 건지 쓸쓸한 건지? 드보르작의 9번 교향곡 ‘신세계로부터’도 좋았고. ‘파곳’이라는 악기의 소리를 골라 들으려고 귀를 쫑긋이 세워도 보았다. 쉽지 않았다. 영어로는 ‘바순’이라고 한단다.

연주가 끝나고 관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기를 기다려 차 떠날 시간 10분을 남기고 대합실에 도착했다. 공연의 기분에 들떠 승강장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그냥 거기 서 있으면 차가 오겠지 하고 8번 승강장에서 기다렸다. 마산행 버스가 있는데 시동도 없고 손님도 없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알아보니 11번 승강장에서 버스가 막 떠났단다. 막차는 한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한다.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여유를 부렸다. 심야버스를 타고 느긋하게 쉰다. 그러면 100분후에 내려주고..... 느긋하게 대합실을 거닐면서 단지 배터리가 다 닳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은 했다.

창밖의 정취를 넉넉히 담아두려면 운전이 거북하다. 의자를 젖히고 원근 풍경을 쓸어 담다가 버거우면 이 생각 저 생각을 끼적이는 것도 재미다. 그래서 시외버스를 탄 것이다. 불밤송이 같던 머리카락을 들이 밀어 까까중으로 만든 들판엔 볏짚을 둘둘 말아 던져 둔 비닐 덩어리들이 사탕처럼 뒹굴고 있다. 들판은 황금빛에서 잿빛으로 탈색되었으나 숲이 울창한 산, 울산에는 아직 한창인 단풍이 나를 반긴다. 그러다가 잠이 들었다.

잘 나가던 여행은 왕복 버스 때문에 망가졌다. 울산으로 가는 버스는 햇볕을 가려야 할 정도로 낮의 온기가 높았다. 주말이라 길이 막힐 것이라는 안내를 받았으나 그리 밀리지는 않았다. 어느 사이 잠에 빠졌다가 발이 뜨거워 깼는데 히터가 신나게 돌고 있다, 이마에 땀이 나고 가슴이 답답해서 히터를 꺼 달라고 부탁을 했더니 에어컨을 켜라한다. 더우면 에어컨을 켜지 그것도 모르냐고. 보리깜부기 같은 곰팡이 냄새에 숨이 막힌다. 온 몸을 퀴퀴한 에어컨 곰팡이로 샤워하고 바닥에서 나는 뜨거운 히터 바람에 구두가 녹고 있다. 이런 빌어먹을.

내 환상의 심야버스는 고문이었다. 자정이 넘은 밤 공기는 썰렁하여 히터를 켜 달라고 했는데 들은 척도 안한다. 부아가 치밀어 오르는데 꾹 참았다. 조명을 차단하고 시린 코를 달래려고 목도리를 풀어 눈과 코를 감쌌다. 신병훈련소처럼 어서 시간이 지나기를 빌 뿐이다. 잠은커녕 짜증이 나서 노트에 몇 자를 적어 ‘울산버스’라 제목을 달았는데 손이 굳었는지 ‘울산벅수’로 저장됐다. 벅수? 키가 커서 꺼벙해 보이는 장승을 벅수라 하는데, 벅구나 벅수는 바보 멍청이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나는 바보다. 참 멍청했다. 벅수, 그래 내가 울산에서 벅수 되었다.

대낮의 버스는 아닌 히터를 켜고 끄지도 않더니 심야버스에는 부탁하는데도 왜 안 켜주는지. 평생 빌어먹으라고 해서 격분해 아내를 죽였다는 어떤 남편의 이야기가 왜 생각나는지? 어느 주말에 완행열차라도 타고 어디론가 떠나보려는데 환상이 깨질까 두렵다. 불편함 보다 더 참기 어려운 것은 무시당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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