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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발로 끝난 털갈이 (2018.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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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최고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93회 작성일 18-05-22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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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두텁고 긴 겨울이 지나자 털갈이를 하는 기분으로 봄 바지를 하나 사려했다. 그런데 하나같이 가랑이가 솔다. 사타구니가 되고 끼이는 기분이라 널널하고 편한 바지를 찾는데 그런 것은 이 봄에 홍시를 찾는 것처럼이나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빌어먹을 유행! 내가 여려서 맘보바지가 나온 적이 있었다. 마치 지금의 쫄 바지나 비슷해 보여서 저걸 어떻게 입고 다니나 했었다. 없어 보였다. 유행은 쫓는 사람에게 해당하고 나 같은 사람을 위해서는 가랑이 너른바지도 팔아야지? 결국에 바지를 사지 못하고 몇 년째 입던 바지를 입기로 한다.

2. 늦은 밤 독립영화관에서는 ‘아들에게 가는 길’이란 영화를 돌리고 있었다. 부부가 수화로 소통하는 걸로 보아 조용하게 사는 사람들임에 틀림없다. (벙어리라고 말하면 언어폭력이 되는 건가 몰라서다.) 그렇다. 말을 해서 좋은 게 뭐람. 시끄럽거나 불쾌하거나 부아가 날 소음들만 쏟아내지 않았던가? 그래서 묵언정진(默言精進)이 있다. 우거진 신록에도 질서를 따라 꽃이 피고 열매가 익어간다. 산과 들에 무엇을 심고 어떻게 가꿀지를 생각해서 가꾼 것이라면 이렇게 자연스럽게 어울리게는 못했으리라는 생각이다. 자연의 묵언 운력(運力)이다.

3. 내일 나오는 학보의 사설을 청탁받은 지가 열흘이 넘었다. 가정의 달 5월에 어울리는 글을 쓰리라 했다. 어인이날에 어버이 날, 그리고 성년의 날과 부부의 날, 모두 가족과 가정의 달 맞다. ‘부처님오신 날’도 있는데 가족과 함께 하는 날로 삼으라고 쉬게 하는 것 같다. 그런데 무얼 어떻게 쓸까 하면서 시간을 다 보내고는 마감시간을 다투며 쓰고 고치고를 반복한다. 원고지 6장 반은 집 떠난 자녀들에게 하나라도 더 담아 보내려, 라면 박스 안에 이것저것을 바꾸어 담아보는 시골 엄마의 심정이다. 글은 채우기도 어렵지만 써 놓고 지우기도 아깝다. 연결이 매끄럽지 못하면 그것도 쳐 내야 하고 비유가 건너뛰면 비약이라 (이해가) 못 따라 오니 중간 다리를 이어 주어야 한다. 읽기에도 리듬과 호흡을 고려해야 하니 길다고 잘하는 문장은 아닌 것. 조림은 데치는 것과 달라 잔불에 오래 두어야 하듯이 글은 살짝 데친 봄나물 같은 상큼함이 좋을지, 몇 시간을 조린 깊은 맛이 좋을지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4. 가정의 달이라 하여 겨우 넷이서 네 집으로 사는 우리 가족을 생각하자니 멀리 타국에서 혼자 지내는 막내 딸아이가 생각난다. 유달리 질문이 많았던 녀석은 무엇이건 궁금하면 파고들어 스스로 증명하려 하였다. 사물의 이치를 깨닫고 증명하면 즐겁다고 물리학에 빠져들었고 100년이나 앞서간 아인슈타인의 중력파 이론에도 심취하여 그 중력파의 발견 팀에도 함께 했다. 무한한 우주공간에 광년단위의 시간을 넘나들며 은하계 너머로 가없이 펼쳐진 세상을 살고 있다. 아이는 고국을 와 본지가 너무 오래다. 힘들 거다. 지켜보고 있다. 잘 해낼 거라 생각하면서도 미안하고 안됐다. 힘 내거라, 아가야! 가던 길을 계속 가라. 쉬지도 서두르지도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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