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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思)계절 - 진실된 사랑과 참된 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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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운영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477회 작성일 09-03-07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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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 유타대 레저학부 박사과정

  지난 달 한국 사회의 정신적 지도자라고 할 수 있는 김수환 추기경이 87년의 생애를 마감하고 선종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신문에 나온 사진을 보고 돌아가셨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선종(善終)’이라는 용어가 무엇인지 몰랐다. ‘이것은 대체 무슨 말인가?’ 실망스럽게도 지식의 짧음이 또 한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사전을 찿아보니 '착하게 살다가 복되게 생을 마친다'라는 뜻을 가진 한자성어 '선생복종(善生福終)'의 준말로, ‘죽음’을 뜻하는 카톨릭 용어라고 한다. 평생의 일지를 읽어보니, 너무나 위대한 일을 많이 하셔서 가히 ‘성인적(聖人的) 인물’ 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듯 한국 종교계의 큰 인물들이었던, 성철스님, 한경직 목사, 김수환 추기경 등, 한 분 한 분이 돌아가실 때 마다, 실로 많은 국민들이 애도하고 진실된 마음으로 그들의 명복을 빈다. 김 추기경이 살아 생전 서명했던 ‘안구기증’ 또한 모범이 되어, 요즘 사람들이 안구나 장기기증서에 많이들 서약을 한다고 한다. (이런 현상이 일시적이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과연 이런 종교계의 ‘큰 분들’이 어떻게 사람들에게 그토록 감동적 영향을 끼칠 수 있었는가 생각해 보았다. 아마도 과거의 어떤 대통령이 돌아간들, 어떤 재벌이나, 석학이 돌아간들 이토록 많은 국민들이 진정 슬퍼했겠는가? 가만 살펴보니 이런 분들에게 (종교의 이론과 진리를 떠나서) 몇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중 가장 큰 공통점은 그 분들이 ‘정신적 지도자’ 로 칭함을 받고 있지만, 사실은 ‘진정한 사랑의 실천자’였다는 사실이다. 평생 힘들었고 말년까지 가난했지만, 늘 감사하고, 행복한 일생을 걸어 왔다. 또한 모든 사람의 생명과 영혼은 이 세상보다 소중하고, 인격과 가치는 누구나 똑같다는 진리를 믿고, 오히려 타인을 자신보다 더 낫게 여기고 존중하며, 항상 겸손과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대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손해보는 경우도 많았지만, 가난하거나 병든 사람들, 외로움에 신음하는 이들, 심지어 흉악범들까지도 심히 안쓰럽게 여기어, 평생 돕고 보살폈다는 것이다. 그런 모든 선행과 봉사들이 (많은 경우) 남 모르게 행한 것들이기에, 도와준 사람도 받았던 사람도 더욱 기뻤으며, 그 자비와 사랑의 가치가 더욱 빛났다. 

  결국, 두 손에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이 태어난 것 처럼, 세상을 하직할 때도 아무 재산도 남기지 않았다. 그러나 그 분들이 돌아가신 후에는, ‘자비와 사랑’이란 빛나는 보석을 국민전체에게 남긴 것이다. ‘남을 위해 베풀고 주는 것이, 받고 얻는 것 보다 더 복되다’는 진리를 몸소 보여주었던 것이다. 여기에 헤아릴 수 없는 리더쉽과 파워가 내재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더욱 깊은 존경을 받는 것이고, 뭇사람들로서는 감히 따르지 못할 높은 차원과 수준에서의 일생이었다고 보여진다.

  몇 달 전, 인터넷에 게재된 뉴스와 자못 비교가 된다. 한국의 ‘명문고’로 일컬어지는 학교 학생들이 ‘해외 자원 봉사’를 목적으로 많이들 출국한다고 한다. 그 주요 이유는, 미국 명문대에 입학허가를 위한 발판을 마련하기 위함인데, ‘불우한 이웃을 돕는 봉사활동’에 가산점이 많다는 정보를 입수해, 동남아 후진 지역이나 몽고로 팀을 만들어 떠난다고 한다. 이런 분위기를 편승해 여러 여행사들이 ‘봉사활동’ 여행상품을 만들어 제공하고, 게다가 중-고등 수준의 ‘전국 자원봉사 대회’를 열어, 금-은-동상을 수여하는 장학금제도도 만든다 하니, ‘선행과 봉사’ 그 참된 목적과는 약간 빗나가는 것은 아닌가 우려된다. 과연 학생들이 봉사의 참된 의미을 깨닫고 자원해서 가는 것인지, 아님 단순히 명문대 입학을 염두에 두고, ‘남들이 가니까 나도 가야한다’는 생각은 아닌지… 자원봉사가 ‘타인을 위한 목적’이 아니고, ‘자신의 방편을 위한 것’이라면, 뭔가 주객이 전도된 모양새가 된다. ‘자원봉사는 대학입학을 위해서 가야한다’라는 논리라면, 도움을 받는 이에게도 덕이 되지 못할 뿐 아니라, 도움을 주는 학생자신도 왜곡된 목적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대학을 명문(名門)으로 들여 보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생각을 정문(正門)으로 들여 보내는 것이 자녀의 고차원적 교육을 위해 더 중요하지 않을까? 명석하기 보다는, 지혜로와야 할 계절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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