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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상자 /수필- 이성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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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운영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124회 작성일 11-09-30 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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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깜깜한 밤하늘에 별 한 개가 톡 터지 듯, 아버지가 내 이름을 부르며  암흑으로부터 툭 튀어나왔다.    너무 뜻밖이라  눈을 동그랗게 치켜뜨며

“어머!  아,  아버지!”하는 순간, 화면이 바뀌 듯 아버지의 모습이 스윽 사라졌다. 

  눈을 번쩍 떴다.  꿈이었다.  동시에 전화벨이 유난히 날카롭게 ‘따르릉~ ~’ 울렸다.  아직 나뭇가지에 둥지를 틀고 있는 새들도 일어나지 않은 시간에 울리는 전화벨 소리!  한국이 아니면 이토록 이른 시간에 전화을 걸어 올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응급 상황이 아니라면 더욱더.  아니면 시간을 잘못 계산했을 수도 있고.  그렇지만, 울리는 전화벨 소리의 느낌이 시간 계산을 잘못해서 울리는 것 같지 않았다.  느낌이 그랬다.  무엇을 빼앗 듯이 수화기를 낚아챘다.  ‘헬로우’도 아닌 ‘여보세요’를 불안과 긴장된 어조로 뱉었다.

“…….”

  상대방의 침묵에 불안감의 수위가 가파르게 치솟았다.  나는 다시 다그치 듯 ‘여보세요’를 외쳤다.  그러자 수화기 너머에서 착 가라앉은 목소리가 훌쩍이는 울림과 함께 들려왔다.

“언니, 나야.”

  팔 남매 중에서 유일하게 부모 곁을 지키고 있는 막내였다.  나는 그 다음 문장이 이어지는 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다그쳤다.

“무슨 일이야?  빨리 말해.”

  빨리 말하라고 다그치고 있으면서도 듣고 싶지 않았다.  느낌은 이미 뭔가 큰 일이 터졌다는 걸 알아차려 버렸기 때문이었다.  심장 박동이 도끼로 장작을 찍어내리듯  턱턱 막혔다.  동생이 다음 문장을 이어갔다.

“ 아, 아버지가…  아버지가 돌아가셨어.  조금 전에. 어~어~ㅇ~ 엉~엉~.”

“……!!  뭐?  아버지가?  왜?  왜?  아프시지도 않았는데 왜? ~ ? ~~ ~!!

  가파른 계곡에서  떨어지는 폭포의 절규처럼 나의 통곡이 새벽 하늘을 울려댔다.  곤히 잠들어 있던 세 아이는 영문도 모른 채 일어나 따라 울었다.  죽음이 뭔지도 모르는 세 아이가 엄마가 우니까 그냥 따라 울었다.  나도 어렸을 때 그랬었다.  엄마가 아버지와 싸우고 부엌에서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나는 부엌문 밖에서 쪼그리고 앉아 울었다.  뭔지 모르게 무섭기도 했고, 엄마가 우릴 두고 어디로 떠나 버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과 불안이 엉켜 있었던 것 같다. 

  허둥지둥, 허겁지겁 한국 행 비행기 트랩을 밟았다.  아이들은 이틀 후면 산타가 가져 올 크리스마스 선물이 못 내 아쉬운 듯 자꾸 뒤돌아 보며 엄마 아빠 손에 이끌려 탑승을 마쳤다.  비행기가 거북이마냥 엉기적거리며 구름 위를 날으는 모습이 갑갑하기 그지 없었다.  김포 공항에 도착해 지방으로 가는 국내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흘끔흘끔 쳐다 보았다.  너무 울어서 얼굴이 퉁퉁 부었나 하는 생각을 하다 뭔가 색다른 그림이 보였다.  기내에 있는 승객들은 두꺼운 코트에 털목도리를 둘둘 말고 그것도 모자라 장갑에 부츠.    그들 속에 섞여 있는 나.  짧은 소매에 샌들!

  그렇듯, 급작스런 아버지의 부고에 추위도 느껴지지 않았다.      팔 남매 중에 나는 불효를 가장  많이 저질렀던 자식이었다.    세상에 제 힘으로 혼자 똑 떨어진 양, 한 푼 벌어 내 입에 풀칠하기에 바빴다.  그러다가 한 남자를 만나  뒤도 돌아보지 않고 팽~ 하니 멀리도 가 버렸다 (하와이로).    그리고 세 아이에게  클레오파트라 머리 잘라 주기에만 바빴다. 

  아버지는 이제 영영 돌아오지 못할 이승의 마지막 길목에서  일하셨던 곳과 큰 아들 집.    그리고 작은 아들 일터를 둘러 보셨다.  장의차가 작은 오빠 사무실 앞에 멈추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의 통곡이 이어졌다 .    아마도 우리가 울었다기보다는, 아버지의 영혼이 상복을 입고 있는 작은 아들을 부여 잡고  너무 처절하게 통곡하셨기에, 그  울림에 우리도 덩달아 울었을 것이다. 

소꼬리 사건에서부터 도살장에다 헐값에 팔아 넘긴 소.  그 소 판 돈을 몽땅 가지고 쇠고기 한 근 사러 갔던  일.    양 호주머니에 돈을 빵빵하게 넣고 찐빵 가게에서 찐빵을 사 먹고 있던 꼬마를 꼬득여 자전거 뒤에 태우고  인적이 드믄 곳으로 달려 가고 있던 사람을 발견해, 천신만고 끝에 작은 오빠를 찾았던 일.  학자금을  마련해 줄 소가 없어져 중학교 등록금을 못 대 준다고 하자, 반짝반짝 빛나는 두뇌로 거뜬히 해치워 혼자 힘으로 학교를 다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증발해 버린 사건.  집에서 등록금을 대 준 일도 없었기에 작은 오빠의 행방불명에 대해 노발대발할 처지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부모 된 입장에서 모른 척하고만 있을 수 없어 수소문에 나섰다.  알고보니 큰물에서 놀아야겠다고 항구 도시 여수로 덜컥 떠나버린 것이다.    지금도 오빠가 증발해 버린 날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그날따라 작은 오빠 책가방이 유난히 두둑하고 무거워 보였다.    방을 나서기 전 학생모를 반듯하게 고쳐 쓰는 오빠의 표정이 어떤 결의에 차 보이기도 했었다.

  아버지에게 있어서 두 아들은 대들보였고, 딸 여섯은 덤이었다.    대들보가 없어져 버린 우리집은 휑~ 하니 을씨년스러웠다.    결국 아버지는 작심을 했다.  그리고 덤 여섯을 허리에 꿰차고 깃발을 치켜 들었다.    그 깃발에는 ‘자식들의 교육을 위하여!’라고 적혀 있었다.  그 깃발 아래서 우리 덤들은 ‘오빠야가 가는 길이면 그 길이 아무리 험난한 골짜기라도 어디든지 따라가겠다’ 고 외치며  <맹목 부대> 멤버로 머리띠를 질끈 동여맸다.  쌀자루처럼 쳐진 볼들을 하고.

  도심의 현실은 팍팍했다.    아버지와 작은 오빠의 거리는 좀처럼 좁혀 지지 않았다.  아버지 마음 한 구석에는 어쩌면 소꼬리 사건이 사그러지지 않고 있을 수도 있었다.  그러기에 작은 오빠가 어떤 계획을 내 놓으면 신뢰보다는 불신이 앞을 가로 막았을 것이다.  그 사이에서  우리 <맹목 부대> 멤버들의  등이 툭툭 터질 때도 있었다.    그나마 곡예사의 줄타기처럼 아슬아슬하게 이어져 오던 아버지와 작은 오빠의 줄이 툭 끊겨 버린 사건이 발생했다.    ‘대갈빡에 피도 안 마른 녀석’ 이라고 치부해 버리기에는 훌쩍 장성해 버린 작은 오빠는 야심 찬 계획을 갖고 있었다.  어찌 그 머리와 배짱으로 야심 차지 않을 수가 있었겠는가!  아버지가 소유하고 계시던  땅에  건물을 올리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아버지는 ‘주먹만 할 때부터 통 크게 일을 저질른다’는 작은 아들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딱 잘라 거절했다.  대립은 막 갈아 놓은 칼날처럼 날카로워졌다.  작은 오빠는 또다시 ‘등록금 못 대 줌’ 선언을 인식한 듯, 홀로 땅을 구입해 번듯한 건물을 올렸다.    건물이 완공되었을 때도 아버지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엇갈린 두 그림자가 달빛에 비춰지기도 하고 햇빛에 묻히기도 했다.

  그렇듯, 살아 생전에 가 보지 못했던 둘째 아들의 삶의 터전을 주검으로 밟으셨다.  장의차에서 흘러나오는  애절한 선소리가 건물 구석구석을  어루만졌다.  아버지는 여섯 명의 덤까지 교육을 모두 마쳐 주시고, 마치 하루 일과를 끝내고 휴식을 취하듯  주무시다가  가셨다.  평생 당신이 살아오신 그 길이 유언인 듯, 그렇게 가셨다.

  장례를 다 치르고, 우리 덤들은 아버지 방에 모여 앉아 유품 정리에 들어갔다.  덤들이 때마다 사드린 선물에는 딱지가 떨어지지 않은 것도 많았다.  아끼시느라 입지도 쓰지도 못하고 가신 그 모습이 애석해 덤들은 또 울었다.  그 누구도 그만 울라고 말리지도 않았다. 

  그때 막내가 색이 바라고 귀퉁이가 뭉개진 작은 상자를 발견했다.  무게도 가쁜했다.  도대체 뭐길래 이렇듯 소중하게 간직해 두셨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덤들의 눈길이 하나같이 막내 손에 들려 있는 상자에 머물렀다.  막내가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삶은 달걀 노른자만큼이나 누런 서류가 곱게 접혀 있었다.  서류를 펼쳤다. 

  성적표였다!  작은 오빠의 국민학교(초등학교) 성적표!  40년 전 것이었다! 

  그 성적표에는 수수대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었다.  우리 덤들은 울던 턱을 떨어뜨린 채 성적표를 들여다보다가  깔깔깔 낄낄낄거리며 방바닥에 나뒹굴어져 버렸다.    울다가 웃으면 항문에 일어난다는 현상에 대해 염려할 겨를이 없었다.  성적표의 선생님 코멘트 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두뇌는 명석하나 잔머리를 잘 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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