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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중후반 이미 1천여명이 중국을 거쳐 유타주로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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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운영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37회 작성일 18-04-04 0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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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대 중후반 미국으로 건너오기 시작,
이미18세기 중서부 지역 한인 유입 가능성
 
당시 "악덕 광산업자들에게 일부 살해됐을 수도"


(서울=연합뉴스) 홍덕화 기자 = 미국으로 이주한 첫 한인은 1903∼1905년 사이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으로 건너간 노동자 7천226명이라는 공식 기록과 달리, 19세기 중후반 이미 1천여명이 중국을 거쳐 유타주로 이동, 대륙횡단철도 부설 공사장과 광산에서 일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유타, 와이오밍 등 미 중서부로 이동한 한인 노동자들의 흔적 발굴에 천착해 온 재미 지리학자 이정면(86.李廷冕) 유타대 명예교수는 10일 1860년대에 동,서부에서 각각 건설된 철도 교차지점인 유타주 골든 스파이크와 금, 은, 구리광산 등이 산재한 중서부에 노동력 수요가 많아 중국 등 외국 근로자들이 대거 몰려 들었고 이 와중에 한인들이 유입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솔트레이크시티 유타대학교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39상자 분량의 커네컷 동(銅)광산 자료중 고용자 명부(Employment Card)에 따르면 철도공사 완료 후 한인들이 광산지대로 옮겼으며 1909∼20년 고용된 인부들의 출신국 혹은 지역이 '한국(Corea, Korea)', '전라도(Jullado)' 등으로 적힌 '한인(Corean)' 411명이 있었다.

이 교수는 "1800년대 중후반 미국으로 건너오기 시작해 이미 1920∼30년대 중서부 광산에서 많은 한인들이 살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라고 말했다. 지난 9월 자료 수집차 방한한 이 교수는 미국으로 돌아갔다.

지금까지는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던 한인 1천여명이 농장주의 착취를 견디다 못해 미 본토로 이주, 중서부 탄광이나 철도 공사장 인부로 일해 온 것으로 추정돼왔다. 그러나 솔트레이크시티 시립묘지 등의 묘비와 사망자 명부를 살펴보다 1890년대 이전 사망자 중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이름, 한글 묘비를 찾아냈으며 이는 1800년대 중반에 건설된 미 대륙횡단 철도공사에 한인들이 선로공(trackman)이나 채탄부(trackgang)로 일했음을 시사해준다고 그는 덧붙였다.

이 교수는 이어 "여러 자료에 따르면 1860년대 학정과 기근을 견디지 못해 약 400만명이 조선 땅을 등졌는데, 중국 만주로 떠난 200만명중 일부가 중국인 노동자(Chinese coolies)들에 섞여 유타주의 철도 공사장으로 유입될 때 따라온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인 광부 다수가 임금을 주지 않으려는 악덕 업주에 의해 폭발사고로 위장, 살해됐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중서부 산간지대를 20∼30여 차례 찾아가 한인 흔적을 찾던 중 유타주 트레몬튼의 한 온천에서 만난 한 백인으로부터 "할아버지로부터 '커네컷 광산에서 임금을 주지 않으려고 광부들을 잡아다 골짜기에 모아놓고 다 죽였다. 당시 광산에서 흔한 일이었다'는 말을 들었다"는 것이다.

이 증언에 따라 인근 묘지 관리소의 매장자 명부를 열람한 결과 한인 이름을 다수 찾아냈다.

또, 유타주 캐슬게이트 광산에서도 1924년 3월 8일 지하갱도에서 두 차례 대폭발 사건이 발생, 171명이 생매장됐으며 이들은 한국인 3명을 포함해 대부분 24개국 출신의 외국인이었다. 이 사건을 조사하던 중 인근 묘지에서 '원적 한국, 류공우, 경긔 포천'이라는 한글로 된 묘비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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