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 5개월 모험왕 포셋 > 특별취재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특별취재

실종 5개월 모험왕 포셋

페이지 정보

작성자 no_profile 운영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774회 작성일 08-04-16 03:35

본문

억만장자 모험가 스티브 포셋(63·Steve Fossett)

"그는 아직 잊혀지지 않았다"
법원은 사망선고 했지만…
유타(미국)=함지하 jihaha@gmail.com

지난달 15일 미국 일리노이주의 한 지방 법원은 '정황상 증거가 충분하다'며 억만장자 모험가 스티브 포셋(63·Steve Fossett)의 사망을 인정했다. 지난해 네바다주 예링턴공항을 출발, 홀로 여행에 나섰던 포셋이 자신의 소형 비행기와 함께 실종된 지 5개월 만의 일이다.

그가 실종된 직후 정부당국을 비롯한 여러 단체들이 수십 대의 비행기와 헬기를 동원, 5만2000㎢에 이르는 네바다 사막을 뒤지며 그의 행방을 쫓았지만 아직까지 그가 조종했던 비행기의 잔해조차 찾지 못했다.

포셋은 억만장자라는 타이틀과 함께 모험에 있어서 여러 진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그는 2002년 열기구로 무착륙 세계일주에 성공했고, 3년 후에는 비행기를 타고 중간 급유 없이 67시간 만에 지구를 한 바퀴 돌기도 했다. 뗏목 하나에 자신의 몸을 싣고 58일 동안 세계를 항해한 일도 유명한 그의 기록 중 하나다.

그는 에베레스트 산을 등정했으며, 영국 해협을 맨몸으로 건넜다. 또 크로스컨트리 스키를 신고 약 60시간을 이동한 기록 보유자다. 그가 세운 세계 신기록만 해도 115개가 되고, 아직 깨어지지 않은 기록만 60개가 남아있다. 이번 사고도 포셋 스스로가 최고 속도 기록을 수립할 수 있는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기 위해 나섰다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1944년 테네시주에서 태어난 포셋은 어린 시절부터 모험에 꿈을 키웠다. 2년 전 CNN과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처음으로 산에 올랐던 12세 때 산을 오르고 또 오르면서 다양하고 더 큰 도전을 만났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 후 여러 모험가들의 책을 읽으며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목표를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다.

본격적인 모험가의 삶은 대학 시절부터 시작됐다. 스탠퍼드에서 학부 공부를 하던 시절, 그는 샌프란시스코의 알카트라즈 해상 감옥까지 헤엄쳐 건넌 일화로 유명세를 탔다. 포셋은 당시 라이벌 관계에 있던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 캠퍼스(Universi ty of California at Berkeley)를 겨냥 '캘리포니아를 이기자 (Beat Cal)'라는 문구를 감옥 벽에 걸고 왔다. 거친 파도와 식인 상어의 공격으로 단 한 명의 탈옥을 허용하지 않았던 감옥이 바로 알카트라즈 감옥이다.

그렇게 모험가로의 길을 걷던 포셋은 워싱턴대학에서 MBA를 수료한 뒤 세상으로 뛰어들었다. 시카고와 뉴욕에서 상품(Commodity) 투자와 거래로 이름을 날리던 그는 33세였던 1977년, 고위험상품시장 거래로 100만 달러를 벌며 백만장자 대열에 오른다. 1980년대에는 직접 자신의 투자회사를 설립, 매년 1000만 달러를 개인재산으로 벌어들이며 큰 부를 쌓게 된다.

포셋은 사업을 운영하면서도 늘 모험을 하듯 그만의 '도전'을 즐겼다. 미국의 한 언론은 "포셋은 아무리 위험한 투자라고 할지라도 준비만 철저하다면 바다에 뛰어들고 하늘로 오르듯 위험을 감수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그가 벌어들인 막대한 재산은 수많은 모험과 도전을 가능케 했다. 그러나 그가 특이한 도전으로 유명세를 탄 뒤에는 그를 후원하는 기업이 나타나, 포셋은 모험으로 돈을 벌게 되기도 했다. 그중 자신도 모험가이면서 억만장자인 영국 버진 그룹의 리차드 브랜슨 회장이 포셋의 모험에 많은 도움을 준 것으로 유명하다.

포셋이 기억하는 가장 최고의 도전은 단연 '열기구 세계일주'. 14일간 3만3195.10㎞의 거리를 중간 착륙 없이 공중에만 떠 있었다. 5번의 실패 끝에 맛본 성공이었다. 포셋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힘들었다"면서 "성공을 하기까지 6년간 노력했다"고 말했다.

열기구로 도전을 하면서 포셋은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다. 1998년에는 위험한 불시착으로 죽을 고비를 넘겼고, 같은 해 다시 시도한 도전에선 2만9000피트 상공에서 불어오는 강한 폭풍 때문에 호주 바다에 추락하기도 했다.

미국 내 일각에서는 이번 실종 사건에 일종의 음모설을 제기하며 포셋이 살아있을 것이라는 주장을 내세우기도 한다. 포셋이 미국 정부의 비밀기지에 착륙했거나, 접근이 금지된 기지로부터 격추됐을 것이라는 설이 그것이다. 그중 포셋이 가깝게 지나쳤을 것으로 예상되는 51구역은 일반인이 다가갈 수 없도록 철저한 보안이 유지된 곳으로, 추락한 UFO의 잔해가 있다는 등의 루머가 끊이지 않는 곳이다. 날씨가 맑았던 실종 당일, 숙련된 비행사인 포셋이 기상이변으로 추락할 가능성이 작다는 것이 그 첫 번째 이유이며, 잔해를 비롯한 조금의 흔적조차 발견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 이런 음모설을 부채질하고 있다. 특히 불가능한 일에 도전하기를 즐겼던 그가 정부의 비밀장소를 궁금해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그러나 포셋의 유일한 가족인 그의 부인은 남편의 죽음을 일찌감치 받아들였다. 포셋과의 사이에 자녀가 없는 부인 페기 포셋(Peggy Fossett)은 사건이 발생한 지 한 달 뒤 공식적으로 남편에 대한 수색 종료를 요청했다. 그리고 얼마 후 "이런 결론을 맞이하게 되어 매우 힘들지만, 더 이상 스티브가 살아있다는 희망을 놓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일리노이주 쿡 카운티 법원에 제출했다.

사건 발생 일주일이 지났을 때까지만 해도 자신의 남편을 찾는 팀원들과 주정부 관계자들에게 감사와 격려의 편지를 썼던 부인이었기 때문에 다소 이른 그녀의 결정은 많은 이들을 의아하게 했다. 재산 갈등 등의 복잡한 문제가 없는 부부였기에 더욱 그랬다.

사람들은 포셋의 부재가 길어지는 것이 단순히 한 가정은 물론, 그가 관련된 여러 기업들과 단체들에 많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또 다른 한편에선 여러 구조 단체들을 배려한 것이라고도 풀이한다.

비록 포셋의 기록 대부분에는 '단독(solo)'이라는 표현이 붙어있지만, 그는 그와 함께 일했던 팀원들을 잊지 않았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포셋은 "사람들은 홀로 비행하는 비밀이 무엇이냐고 묻는데 그 비밀은 팀의 훌륭한 지원 덕분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며 자신이 고용했던 사람들을 늘 추켜세웠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죽음을 선고 받았음에도 그와 함께 일했던 팀원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그를 찾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관계 당국에 의한 공식적인 수색 작업은 지난해 10월 2일에 종료되었지만, 비행사들로 구성된 자원봉사자들이 그의 수색을 이어가고 있다. 네바다주 구조부서의 한 직원은 "정부가 아닌 개별로 구성된 여러 다른 단체들이 포셋의 수색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며 "포셋은 아직 잊혀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기고 기사>
유타(미국)=함지하 jihaha@gmail.com

추천0 비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74건 1 페이지
게시물 검색


Copyright © utahkorean.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