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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교포 사이먼 조 선수, 2010 뱅쿠버 동계올림픽 대표 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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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운영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370회 작성일 09-11-08 0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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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살 때 뱅쿠버에서 어머니의 손을 잡고 미국으로 밀입국,
18세에 뱅쿠버 동계올림픽 최연소 미국 국가대표 선수로 출전,
아메리카드림을 이룬 감동스토리


  [인터뷰/취재-윤인섭기자 KTU]   

  2002년 솔트레이크 동계 올림픽을 계기로, 스피드스케이팅 쇼트트랙 종목의 아폴로 안톤 오노 선수를 모르는 한국인은 거의 없을 것이다.
  미국에서도 오노 선수는 빙상계의 스타로서, 미국 대표팀의 맏형이다. 그러나 그 오노 선수가 자신의 은퇴 후 미국 쇼트트랙팀을 이끌어나갈 주전으로 점찍어 놓은 후배가 바로 한국계 조성문(미국명:사이먼 조, 18세) 선수라는 사실은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장권옥 코치, 여준형 코치, 조성문 선수. 이 세 명의 아름다운 인연이 빚어낸 기적의 드라마가 2009년 9월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에서 펼쳐졌다.

  조선수와 스케이트와의 인연은 오래 전 한국 인천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네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동네 스케이트장에 다니면서 조선수는 스케이트의 매력에 점점 빠져들었다. 이후 어쩔 수 없는 가정 형편 때문에 어머니의 손을 잡고 미국으로 밀입국하고, 신분 문제 때문에 당국의 눈을 피해다니는 과정에서도 조선수의 스케이트에 대한 열정은 사그러들지 않았다.
  그러기를 8년여, 13세에 드디어 사면조치를 받아 미국 시민권을 획득하게 된 뒤부터 조선수의 선수생활은 서서히 꽃을 피우게 된다. 그 결정적 계기는 장권옥 코치(42세)와의 만남이었다.

  장권옥 코치는  한국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 출신으로서 2003년 미국 쇼트트랙 국가대표팀 코치로 스카웃 되어 지금까지 미국 대표팀을 열성으로 지도하고 있다.
  장코치가 미국 내에서 기대주들을 물색하는 과정에서 단연 눈에 띈 선수가 바로 조성문 선수였다. 180cm의 키에 55kg라는 이상적인 체격조건, 네살부터 스케이트를 타온 덕분에 몸에 배어 있는 탁월한 균형감각, 그리고 스케이트를 향한 순수한 열정. 이 모든 것이 장코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국가대표로는 너무 어리다는 주변의 만류가 있었지만 장코치는 굽히지 않았다. 거기에 화답이라도 하듯 조선수는 단숨에 미국 쇼트트랙계의 샛별로 떠올랐다.
  조선수는 2006년  미국 주니어 국가대표 자격으로 월드주니어대회에서 참가해 은메달을 따냈고, 2007년에는 유타주 솔트레이크 시티에서 열린 미국 쇼트트랙 챔피언십 및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아폴로 안톤 오노 등 세계 정상급 선수들과 기량을 겨뤄 6위로 국가 대표에 선발되는 기염을 토했다. 사상 최연소로 미국 쇼트트랙 남자 국가대표선수로 선발된 것이다.

  신기록, 최연소, 우승...... 화려한 수식어구를 줄줄이 달고 다니던 조선수에게 위기가 찾아온 것은 지난 2008년.  2010년 뱅쿠버 올림픽 출전 자격을 따기 위해 맹연습을 해오던 조선수였지만 2008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안타깝게도 탈락하고 말았다.
  불행은 겹쳐서 온다고 했던가. 때마침 불어닥친 미국의 경기불황으로 조선수 부친의 사업까지 어려움을 겪게 된다. 국가대표 선수 지원금이 끊긴데다가 가정 형편까지 어려워지자 조선수는 처음으로 자신의 삶과도 같았던 스케이트를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자신 때문에 가족들이 연간 수만불을 추가로 지출해야 한다는 부담감, 처음으로 국가대표 선발전에 탈락했다는 쓰디쓴 절망감은 아직 여린 마음을 가진 10학년 소년에게는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다.

  미국 아마추어 체육 시스템의 특성상, 자급자족이 대원칙이다. 국가에서 지원을 거의 안 해주는 대신, 선수들의 경제활동도 자유롭다.
  따라서 오노 선수처럼 국제적으로 이름을 날린 선수는 엄청난 부와 영예를 누릴 수 있다.
  하지만 조선수의 경우는 제아무리 탁월한 기량과 잠재성이 있다고는 하나, 이제 겨우 고등학생이다. 그래서 조선수와 같은 상황에 처한 미국 선수들은 대부분 후원에 의존한다.
  동네 이웃들, 이름모를 독지가, 신문을 보고 돈을 보내오는 독자  등등 단지 그 선수의 가능성만을 믿고 후원해주는 사람들 덕분에 형편이 넉넉치 않은 선수들도 마음 편하게 운동에 전념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조선수에게는 그런 후원의 손길이 없었다. 그가 보기 드문 재능을 가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아시안이고 이방인인 탓이다. 따라서 경제적 부담은 고스란히 조선수 부모의 몫이 되었고 결국 '스케이트 포기'라는 어려운 결정에 이르게 된 것이다.
  조선수의 재능을 아까워한 오노 선수가 조선수가 국가대표 선발대회에 재도전할 때까지 숙식 제공하겠다고 나설 정도였으나, 그 제안을 받아들이기도 벅찰 정도로 경제 환경이 너무나 혹독했다.
  하지만 조선수를 이대로 보낼 수 없다고 생각한 장코치는 끈질기게 조선수를 설득했다.
  이때 한국에서 날아온 소중한 인연이 바로 여준형 코치(26세)였다. 한국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이기도 했던 여코치가 2009년 1월 솔트레이크시티의 클럽 코치로 스카웃되어 온 것이다.
  여코치는 때로는 형으로서, 때로는 코치로서 조선수를 다독였다. 또한 너무나 뛰어난 실력 때문에 연습 상대를 찾기가 어려운 조선수를 위해 스스로 최고 수준의 연습 상대가 되어주었다. 그리하여 조선수는 2009년 9월에 실시되는 2010 뱅쿠버 올림픽 대표 선발전을 4개월여 앞두고 다시 스케이트를 신게 된다. 조선수의 부모님은 아들의 재도전을 위해 은행 대출이라는 모험까지 감행했다.

  6개월 간의 공백, 그리고 불과 4개월의 준비기간. 어쩌면 무모한 도전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일'을 내기 위해 충분한 조건이 모두 마련되어 있었다.
  장코치의 경험과 식견, 여코치의 지도, 다시 불타오른 조선수의 열정. 결국 조선수는 지난 9월 12일 막을 내린 2010 뱅쿠버 올림픽 대표선발전에서 500m 1위, 종합 6위라는 성적으로 당당히 올림픽 출전 자격을 따냈다.
  이제 조선수는 내년 2월에 열릴 뱅쿠버 동계 올림픽 대회에서 500m와 5000m 계주에 출전하게 된다.

  운명이 참으로 얄궂다. 조선수가 어릴적 어머니 손을 잡고 밀입국한 경로가 바로 뱅쿠버이다. 그러나 14년이 지난 지금, 조선수는 올림픽 미국 국가대표로서 자신의 인생에 새로운 장을 펼치기 위해 내년 2월 당당히 뱅쿠버로 향한다.
  뱅쿠버에서 훨훨 날아오를 조선수에게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한인 사회의 관심과 후원이다. 지금 조선수에게 있어서 후원은 단지 금전의 의미를 넘어서 마음 편하게 스케이트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 그 자체라고 할수 있을 정도로 간절하다.
  쇼트트랙 종목의 선수생명은 길어야 30대 초반까지 이다. 조선수에게는 길게 잡아 12,3년의 시간이 남은 셈이다. 이 짧은 선수생명 동안에 또다시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스케이트를 중단한다면 그때는 아무도 재기를 장담할 수 없다.
  어린 나이에 미국을 제패하고, 이제 세계를 제패하기 위해 나선 조선수에게 많은 관심과 든든한 후원이 뒤따르길 기대해 본다.

    /사진-Korean Times Utah

<신문기사 원문 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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